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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 4장 16절, 이런 까닭에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 사람은 썩어(부패) 없어져도 속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지는도다. 할렐루야! 저는 오늘 고린도후서 4장 16절 본문 말씀에 근거하여 삶의 원동력이 되는 자존심을 지키려면, 자존심을 상처나게 하게 하는 원인, 필멸의 긍지를 존중, 부패된 자존심 회복,이라는 제목으로 여러분과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사람은 품위를 지키려는 자존심이 있어야 합니다. 마귀는 어떻게 해서든지 인간의 자존심을 부패 시키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상한 갈대도 꺾지 아니하시고 껴져가는 등불도 끄지 아니하시고 원수 마귀로 인해 상처난 자존심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그러면 자존심이 상처나게 되는 원인은 무엇이며, 자존심을 회복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1. 자존심을 상하게 한 원인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원인 대한 인식을 살펴보자. 먼저 죄의식이 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범죄를 저지르는 것에 수치심을 느꼈다. 그래서 실제로 성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들의 마음은 극심한 수치심에 시달리고 있다. 이처럼 성조에 상처를 입은 사람은 스스로 두려움과 불안 속에 살고 사탄에게 점점 더 속아가다가 궁극적으로 인간 이하의 삶으로 떨어진다. 실패는 성조에 대한 인식도 파괴한다. 자신을 능수능란한 존재로 확인하기 때문에, 이후에 대한 꿈을 잃게 된다. 극심한 가난과 장기적인 질병은 성조에 대한 자부심도 파괴한다. 하지만, 입문적 생존 보장이 없거나 불만을 오랫동안 가지고 있지 않으면, 모든 것에 대해 비관적으로 생각하고 특별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성조 배려의 원인으로는 죄책감, 실패, 심각한 빈곤, 장기적인 질병 등이 있다. 이러한 요인들은 존재자 내부에 깊은 상처를 남기며 이는 자신감의 상실로 이어진다. 또한 사회적 비교와 타인의 평가에 대한 과도한 의존도 성조 배려에 해를 끼칠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을 주변 사람들과 비교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느끼는 열등감이나 부족함은 성조 배려의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러한 비교는 특히 소셜 미디어에서 소셜 미디어와 유사하게 강화된다. 소셜 미디어에서는 최대한의 사람들이 자신의 스타일리시한 성조를 보이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관찰자들은 자신의 삶을 종종 비관적으로 바라본다. 결국 성조 배려의 부패는 내적 요인과 외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며, 이를 이해하고 극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2. 예수 그리스도는 필멸의 긍지를 존중
예수 그리스도는 필멸의 긍지를 존중합니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몸짓은 플라타누스 여인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에 깊은 울림을 줍니다. 그의 행위는 필멸의 자질과 긍지를 어떻게 존경할 것인가에 대한 과제를 가져다 줍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질책하고 질책하기보다 사랑하고 이해함으로써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켰습니다. 이는 우리 사회의 순간에 참으로 중요한 과제입니다. 이는 질책하고 질책하기보다 사람들의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의 가치를 존경하며, 이해와 연민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이 사건은 소외되고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미봉책의 빛을 가져다 줍니다. 교황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관심과 사랑은 그가 사회적 편견과 특정한 실패를 극복하는 데 적합하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간 순간이라는 불안과 실망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소통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삶이 섬세하기는 하지만 우리의 가치와 질은 변하지 않으며, 이를 받아들여 내면의 평화와 성품을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모든 연령과 사회를 넘어 예수 그리스도의 행위는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필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보편적인 가치를 전달합니다. 사람들이 서로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사랑할 때 우리 사회는 더욱 건강하고 포용적인 공동체가 될 수 있습니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더 깊이 배우고, 서로의 가치를 존경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3. 부패 된 자존심을 회복하는 방법
고장 난 제품을 가장 잘 고치는 사람은 그것을 만든 사람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부패 된 자존심도 창조주이신 하나님만이 온전한 회복을 시킬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상처 받은 자존심을 가진 자녀들이 하나님을 찾을 때 안아주시고 위로하여 치료하여 주십니다. 또한 성령님 안에서 내일에 대한 소망을 가질 때 부패 된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롬 5:5)라고 말씀합니다. 성령께서는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 주시고 “너희는 장차 새 하늘과 새 땅을 유업으로 받을 하나님의 친 백성이다.” 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나아가서 그리스도 십자가 밑에서 자존심이 회복됩니다. 성경은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을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사 53:5) 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를 대신해 징계를 받으시고 채찍에 맞으신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 나가면 우리는 상한 심령이 고침 받고 회복된 자존심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그가 채찍을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이 말씀의 구절이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예화가 너무 많아요. 후두암 걸린 권사님을 비록한 많은 불치병 환자등의 간증이 많습니다. 결국은 말씀으로 나았다는 것입니다. 이를 정리하고자 합니다. 날개가 찢어진 나비는 아무리 색깔이 고와도 날 수 없는 것처럼 자존심이 상처를 입게 되는 사람은 미래에 대한 꿈을 펼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 11:28)고 말씀 하시는 예수님께 상처 입고 부패 된 자존심을 들고 나가면, 예수님께서는 참된 안식과 회복을 주심으로써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복된 자존심을 회복시켜 주십니다.